제가 최근 핸드폰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근 일주일 넘게 핸드폰없이 생활을 하고 있지요. 핸드폰 관련하여 2000년도에 써놓은 글이 있어서 생각이 나서 여기에 올려봅니다.
이동통신의 확대는 아래 제글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한편으로 회사에서 노동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뭐 쉽게 말하면 내가 어디에 가나 연락이 안된다는 핑계는 댈 수 없고 항상 연락을 받을 수 있다 그런 것이지요. 미국에서는 몇년전 화물운반트럭에 GPS위성을 이용하여 실시간으로 위치을 파악하는 것때문에 트럭노동자들의 싸움이 있기도 하였지요.
쉬는 날에는 그냥 짱박혀서 쉴 수 있는 자유도 주어져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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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핸드폰을 놓고 나간날...
우리는 얼마나 여유롭게 사는 것일까?
2000. 5. 11. 부처님 오신날에....
문태준
(taejun@taejun.pe.kr http://tunelinux.pe.kr http://www.taejun.pe.kr)
90년대 PC통신, 인터넷의 발전과 더불어 가장 큰 변화는 이동통신수단의 발전이다. 유선전화에 이어 삐삐, 핸드폰이 급격하게 보급되었고 이제 이동하면서도 인터넷을 하고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또한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자유롭게 전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새로운 기술들이 빠르게 시장에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함께 우리 삶은 얼마나 여유롭고 풍요로와졌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릴적 우리가 다른 사람과 서로 소식을 주고받는 매체는 전화 아니면 편지였다. 방학때 우체부 아저씨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혹시나 내 편지가 있을까 하는 설레임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한 설레임은 인터넷 이메일로 바뀌고 있다. 집안의 상황상 이성친구의 전화를 받기가 힘들어 시간을 정하고 전화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시절은 이미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PC통신을 처음 접한 것은 91년이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통신인구가 그리 많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군대를 갔다오고 96년말 제대하자마자 제일 처음 한것이 삐삐 신청이었다. 처음으로 이동통신인구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삐삐는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을까. 삐삐는 양방향매체는 아니다. 삐삐는 내가 먼저 연락을 하는게 아니라 그 사람에게 먼저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매체이다. 그 사람이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된다. 개인적으로 삐삐를 그렇게 하고싶었으면서도 이러한 것 때문에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세상이 더 빠르게 변화하고 내가 어디를 가든지 나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싫었다. 그런데 핸드폰이 등장하면서 삐삐는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버렸다. 그 사람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찾을 수 있고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시간과 공간적인 제약이 없어졌다. 약속을 하고 늦어져 그 사람이 기다리기만을 바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업무시간이 끝나도 핸드폰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연락을 하여 어떤 요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근무시간과 근무외 시간의 구분이 미약해진다. 출장중이라서 연락을 하지 못했다는 핑계는 이제 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핸드폰의 열풍(?)속에서도 삐삐를 가지고 꿋꿋하게 버티다가 하고 있던 업무 때문에 작년 99년 가을 회사에서 핸드폰을 마련해주었다. 그런데 며칠전 핸드폰을 놓아두고 사무실에 출근을 하였다. 항상 핸드폰을 옆에 두고 있으면서도 혹시 받지 못한 전화가 있는지 핸드폰을 계속 쳐다보게 되는데 아예 두고왔으니 어떤 전화가 왔을까 궁금해지는 것이다. 어느 순간 나 자신도 핸드폰에 익숙해지고 더 빠른 실시간의 세계에 나도 속해버린 것이다. 운영체제의 종류중에 실시간 운영체제(Real Time Operating System)가 있다. 이건 어떤 요청이 있으면 바로 응답이 나와야하는 경우 사용을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네 삶이 바로 실시간 운영체제처럼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핸드폰을 없애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게 내가 주장을 한다고 해서 없어질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우리네 일상의 삶이 점점 여유가 없어지고 시간이 초단위로 계산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감각은 더 감각적인 것을 받으면서 무디어지듯이 더 빠른 시간속에 살아가고 그러한 삶에 우리가 무디어지고 있다. 속도가 중요시되고 그러한 빠른 시간의 흐름속에 우리가 살아남아야하는 것을 강요받는다. 기술의 발전이 과연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발전시키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속도만을 요구받는 사회적인 환경에서 우리의 문화도 자꾸만 변해가고 있다. 단순하게 핸드폰을 쓰냐 안 쓰냐의 문제가 아니라 물질문명에 동화되어가고 결국은 그 안에 매몰되어버린다. 우체부 아저씨의 편지를 기다리던 그 마음의 여유와 삶의 포근함은 없어져버린채 우리의 마음이 급해지고 빠른 것만을 요구하게 된다.
나에겐 속도의 문화가 아닌 여유의 문화가 더 그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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