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abase.sarang.net
UserID
Passwd
Database
DBMS
MySQL
PostgreSQL
Firebird
Oracle
Informix
Sybase
MS-SQL
DB2
Cache
CUBRID
LDAP
ALTIBASE
Tibero
DB 문서들
스터디
Community
공지사항
ㆍ자유게시판
구인|구직
DSN 갤러리
도움주신분들
Admin
운영게시판
최근게시물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3205 게시물 읽기
 
No. 3205
우리 동네 상암동 이야기
작성자
문태준(taejun)
작성일
2002-11-23 16:24
조회수
2,021

우리 동네 상암동 이야기

 

2002. 11.23 주말에

문태준 (http://tunelinux.pe.kr http://database.sarang.net )

 

# 어디에 살아요?

내가 초등학교때부터 살고 있는 동네는 마포구 상암동이다. 마포구 상암동은 예전에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으로 유명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클때까지 내가 사는 동네가 쓰레기 매립장이라는 것은 감추고 싶은 사실이었고 남들에게 말하기는 속된말(?)로 쪽팔리는 일이었다. 초등학교때야 다 같은 동네 친구들이니 상관없지만 중학교를 가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디에 사냐고 물으면 수색에 산다고 하였다. 수색은 은평구인데 마포구 상암동과 같이 붙어있고 다른 곳에 갈때면 주로 수색에서 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렇다고 수색도 좋은 동네냐하면 절대 그건 아니다. 수색이나 상암동이나 서울 가장 마지막에 있고 나가면 바로 경기도이다. 그래도 어린 마음에 쓰레기 매립장보다는 은평구 수색에 산다고 말하는 것이 그나마 더 나았다. 재미있는 것은 난지도가 1978년까지 경치가 예뻐서 소풍장소로 많은 사람들이 놀러 왔던 곳이라고 한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것이 단 20년도 못 내다보는 행정으로 쓰레기 매립장으로 변했고 다시금 월드컵 경기를 통하여 공원으로 변신을 했다니. 오오~ 위대한 행정이여... 그렇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내가 사는 동네가 개발제한구역이었고 농촌 분위기 물씬 나는 곳이었지만 자연과 벗삼아서 살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 아니었을까.

 

# 물속에서 바라본 세상

위에서 말을 한대로 상암동은 개발제한구역이었고 서울 끝에 있다. 월드컵 경기장이 만들어지기전까지만 하여도 사방이 논과 밭이었다. 여름이면 조그마한 동네 개천가에서 아저씨들은 개를 잡아서 구워 먹기도 하였고 나는 친구들과 함께 개구리를 잡고 살았다. 겨울만 되면 항상 먼저 썰매를 만들어서 탔고 논은 스케이장으로 변신을 하였다. 형들은 자전거를 타고 나는 열심히 뛰어서 경기도로 나가 낚시를 하였다. 수영을 하는데 옆에서 물뱀이 지나가던 그때 그 기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낚시를 한 것으로 매운탕을 끓여먹어서 한끼를 때웠다. 5학년때는 난지도의 땅콩 농장에서 땅콩 서리를 했고 누가 쫒아와서 숨을 헐떡거리면서 도망을 갔다. 어릴때는 수영을 잘 못해서 물에 빠져 죽음의 문턱에서 아름다운 물속 세계를 보기도 하였다. 당장 죽을 판인데 왜 그리도 물속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아름다웠던지. 투명한 물속 세계는 얼마나 신비로왔던지.

 

# 푸세식 싫어

우리집은 동네 구멍 가게였다. 동네아저씨들은 밤마다 와서 막걸리를 마셨다. 우리 집에서 술을 마시면 막걸리 가격에 100원만 더 내면 되었고 푸짐한 김치가 같이 나갔고 더불어 집에서 먹던 반찬도 가끔 손님들의 입으로 들어갔다. 뭐 맛있는거 있어요하면서 솥뚜껑을 들추는 아저씨들이 그때는 참 얄밉게 느껴졌다. (아마 지금 봐도 얄미운 마음은 가시지 않을 것 같다) 우리집 화장실은 요즘 찾기도 힘든 푸세식이었다. 아저씨들 술 먹는 것은 좋다. 근데 이게 여름만 되면 아주 곤혹스럽다. 왜냐. 여름엔 더우니 주로 맥주를 많이 먹는다. 맥주를 많이 먹으면 오줌도 많이 싼다. 이제부터는 뒷간에서 똥을 싸면 엉덩이까지 걸죽한 오줌물이 튀어올라온다. 그래서 집에서 똥을 쌀때는 가느다랗게 조금씩 싸는 기술을 불철주야 연마하였다. 아니면 신문지를 가지고 가서 비스듬히 앉아 신문지에 똥을 싸고 다 싸고나서 신문지를 똥창에 버렸다. 바닥은 삐그럭거려서 똥 싸다가 빠지면 어떻게하나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 공장에서 일하던 형들과 세계화의 물결

우리집 근처는 모두가 공장이었다. 장난감 부품을 만드는 공장도 있었고 스폰지 공장도 있었고 목재를 다루는 공장도 있었다. 그 공장에 일하는 형들은 집이 가난해서 어릴때부터 학교를 그만둔 사람들이 많았다. 옆에 살아도 얌전하게 공부만 하는 나와 그 형들은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던 듯 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그런 거리감이 줄어들어 그래도 가끔 집앞에서 맥주나 소주 한잔을 같이 들이키기도 하였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으로 나는 계속 컸고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많이 바뀌었다. “세계화”의 영향은 우리 동네에도 밀어닥쳐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이 많아졌다. 어눌한 발음으로 아줌마 이거 얼마에요? 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많아졌다. 아마 월급은 한국 국적의 노동자들보다는 훨씬 적었을 것이다. 싼맛에 사용하고 불만이 있어도 말을 잘 못하는 그 노동자들과 함께 우리 동네도 세계화에 열씸~히 동참을 하였다.

 

# 월드컵 경기장과 공원

월드컵 경기장이 상암동에 지어진다는 엄청난 소식이 발표되었다. 동네에 집이나 땅을 가진 사람들은 얼마나 보상을 받을까에 마음이 쏠렸고 세입자들이나 공장을 했던 사람들은 이제 어디가서 일을 해야 할까로 고민을 하였다. 그나마 개발제한구역이고 서울끝에 있어서 집값은 쌌는데 여기가 개발된다면 천상 서울을 벗어나야 하겠지. 2000년도 원주민들에 대한 보상이 시작되고 서서히 사람들은 상암동을 떠나갔다. 우리집도 2000년도에 보상을 받고 근처의 마포구 성산동으로 이사를 하였다고 2002년에 다시 상암동으로 이사를 왔다. 그동안 월드컵 경기장은 공사를 다하여 그 웅장은 자태를 뽐내며 상암동과 성산동 사이에 자리잡았고 월드컵 경기때는 한창 월드컵의 열기를 뿜어냈다. 그렇지만 나한테는 월드컵의 열기보다는 월드컵으로 근처에 공원이 생긴 것이 더 즐거웠다. 물론 무조건 환경탓으로만 핑계를 댈수는 없겠지만 운동을 하고 싶어도 근처에 운동할 곳이 있어야 그나마 결심을 더 강하게 하게 된다. 성산동에 있을 때 자전거를 샀지만 막상 탈만한 곳도 없어서 잘 타지 않다가 다시 상암동으로 이사오고 바로 옆에 공원이 생기니 운동을 그래도 예전보다는 더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삶의 질이란 무엇일까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바로 앞에만 나가도 푸른 공원이 펼쳐져있고 맑은 바람을 마시며 맑게 흐르는 개천을 바라보며 걷는 기분이란. 쉬는 날 집에서 퍼저있는것보다는 자전거 한대 짊어지고 나가서 열심히 페달을 달리는 기분이란. 사람이 밥만 먹고 살수 없겠지. 그렇다고 항상 저 멀리로 여행을 갈 수도 없겠지. 삶의 질이란게 그렇게 거창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즐겁게 밥먹고 나서 가볍게 옷입고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 동네 뒷산에 올라가 한강을 바라보면서 한껏 호흡을 해볼 수 있는 것.

 

# 삶의 질, 그리고 떠나는 사람들

쪽팔림의 대상이었던 난지도가 새롭게 공원으로 거듭났다. 이제 조금만 나가도 푸른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요즘 강남과 강북의 벌어지는 환경 때문에 강북개발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잘 모르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빌딩 많이 세우고 학원 많이 만든다고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사는 곳곳마다 아파트 짓는것보다는 이렇게 공원을 많이 만들고 삶의 여유를 즐기면서 살 수 있는게 더 중요하겠지. 개발을 열심히 하는것보는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살아 갈 수 있고 환경을 보전하면서 공존하는 삶을 만드는게 중요하겠지. 그런데 다시금 예전 우리 동네에 살던 사람들 생각이 난다. 자기집이 있던 사람들은 아파트 입주권을 받고 세입자들은 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는 권리가 나온다. 그런데 세입자였던 사람들이 모두 다 그러지는 않겠지만 임대주택 입주권이 나와도 경제적 사정 때문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들도 많이 생겨날 것이다. 옆에 공원이 생기고 아파트도 생기고 환경이 좋아지면서 기존에 개발을 염두에 두고 투기를 했던 사람들이 또 몰려들 것이고 땅값도 올라갈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삶의 질 운운하는게 웃기는 짬뽕같은 말로 들릴 수 있을 것이다. 집값을 감당못하여 더 싼곳으로 떠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 상암동도 철거민들이 생기면서 그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싸움이 시끄러웠던 것 같다. 환경이 좋아진다고 하지만 정작 그 좋아진 환경을 누리는 사람들은 여기 살았던 사람들이 아니라 개발과 투기 업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집이 사람 사는 데인가. 투기의 대상일뿐이지. 정말 성실하게 생활하고 자기 몸으로 노동을 하여 생활을 하는데도 2년이 지나면 올라간 전세값 때문에 오히려 생활은 더 힘들어지는 형과 동생이 생각나 우울하게 글을 끝맺게 된다. 물론 그게 어찌 남의 일이리. 나도 벗어날 수 없는. 예전 공장에서 일했던 형들이 생각난다.

[Top]
No.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3215솔로들의 크리스마스
뷰티플그린
2002-11-28
1560
3214저 리눅스 완전 초보인데영..*^^*
김영모
2002-11-27
1536
3213<font color=red>추천도서</font> 부탁드립니다.
박남규
2002-11-27
1638
3205우리 동네 상암동 이야기
문태준
2002-11-23
2021
3203[유머]착각들 말아!!!
뷰티플그린
2002-11-22
1647
3199고수님들의 충고좀 부탁드립니다
남정웅
2002-11-20
1682
3198잼있는 이미지 하나~
뷰티플그린
2002-11-20
1784
Valid XHTML 1.0!
All about the DATABASE... Copyleft 1999-2024 DSN, All rights reserved.
작업시간: 0.018초, 이곳 서비스는
	PostgreSQL v16.2로 자료를 관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