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내의 생일날이었다.
매년 무슨 선물을 준비해야할지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고민 아닌 고민을 하게
되는데 벌써 결혼 7년째이다보니 왠만한 선물은 다 한 것 같고 또다시 난감해
졌다.
아내도 이제는 18세 소녀 같은 환상을 꿈꾸는 나이가 아님을 익히 아는지라
괜히 쓸데없이 돈쓰면 되려 욕먹을 것 같고 그래서 부담 안 되면서도 의미를
담은 선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니 더 신경이 쓰여졌다.
그러던 중 문득 어렸을 적 일이 떠올랐다.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데...
오래전부터 생일을 맞이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었다.
늘 쪼들렸던 어린 시절, 생일이 되면 미역국 한 그릇도 과분하게 여겼던 나로
서는 이날은 내게 가장 어색하고 싫은 날이었다.
친구들을 불러 선물을 주고받고 하는 자연스런 현상이 나에게는 어색하기 그
지 없었다. 누군가에게 축복을 받는다는 느낌이 이상하리 만큼 자연스럽지 못
했고 그냥 싫었다.
그래서일까 생일에 대한 의미를 일부러 심각하게 생각해 보기도 하고
뭔가 다른 곳에 이러한 어색함을 돌리려고 무던히도 애쓰기도 했다.
이런 자기합리화의 노력 때문일까 드디어 그럴싸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날, 그러니까 당연히 축복을 받을 만한 날이다.
그러나 이날은 누군가가 한 인간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날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그 누군가에게 감사를 해야 하는 날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래 생일은 내가 축복받아야 할 날이 아니라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드
리는 날이야"
하지만 마음만 있을 뿐 좀처럼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더욱이 생일을 맞은 당사자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게 쑥스럽기도 하고.
결국 한번도 입 밖에 내보이지 못한 채 가슴속에 꼭꼭 담아두고 왔던 것이다.
그래. 아내 생일에 장모님 선물을 준비해 보자.
대상이 좀 바뀌었고 쑥스러움은 남아 있지만
장모님께 아내를 낳아 잘 길러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마음속의 생각을 실천해본다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부랴부랴 장모님께는 부로치, 아내에게는 책과 좀 싼 부로치를 사들고 장모님
댁에 먼저 갔다.
그리고 문 앞에서 선물을 내던지다시피 안겨드리고는
“장모님! 혜원엄마를 낳아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는 뒤도 안 돌아
보고 돌아왔다.
장모님도 좀 황당한 듯한 표정이었다.
다음날 아내로부터 장모님이 어제 그 일로 너무 고마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
다. 생각치도 못했다면서...
장모님의 기쁨은 곧 아내의 기쁨이었고 그것은 곧 나의 기쁨이 되었다.
얼마 안 있으면 내 생일이 돌아온다.
이제는 어머니께 용기를 내어 그동안 가슴에 담아왔던 이야기를 꼭 하고 싶
다.
물론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아내가 나를 대신해서 우리 어머니께 똑같은 기쁨을 안겨드린다면 더없이 좋
을 것이다.
누가 하든 이제는 매년 두 분께 그렇게 해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 퍼왔습니다..
저도 제 소중한 사람에게는 그러고 싶네요.. 후후~
언젠간 그런날도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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